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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만에 또 '22사단의 비극', 엄마에게 남긴 일등병의 편지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7.07.20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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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뷰] 엄마 미안해. 앞으로 살면서 무엇 하나 이겨낼 자신이 없어. 매일 눈을 뜨는데 괴롭고 매 순간 모든 게 끝나길 바랄 뿐이야. 편히 쉬고 싶어."

22사단에서 육군 일병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 남긴 지갑 속에 메모다. 선임병들에게 폭언 및 폭행을 당한 22시단 육군 일병이 국군수도병원 외진 중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죽음에 이르는 또 한 명의 안타까운 비보가 전해졌다.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20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19일 오후 4시 육군 제 22사단에서 선임병으로부터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해온 K(21) 일병이 국군수도병원에서 외진을 받는 과정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부대는 이미 14일에 K일병과의 고충 상담을 통해 피해 사실을 확인했고 18일에는 ‘배려병사’로 지정까지 해놓고도 가해자들과 분리조차 시키지 않았다”며 “사망 당시에는 인솔 간부조차 없었다. 군이 참극을 자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K일병은 지난 4월 육군 22사단으로 전입해온 뒤 지속적으로 병장 1명과 상병 2명 등 선임병 3명의 폭언, 욕설, 폭행에 시달렸다. 훈련 중에 임무에 미숙하다는 이유로 폭언, 욕설을 들었고, 멱살을 잡힌 적도 있었다.

한 선임병은 훈련 중 앞니가 빠진 K일병에게 "강냉이 하나 더 뽑히고 싶냐? 하나 더 뽑히면 부모님이 얼마나 슬퍼하겠냐?"라며 폭언을 했다. 또 다른 선임병은 불침번 근무중인 K일병의 목을 만지며 얼굴을 밀착해 쳐다보며 "왜 대답을 안 하냐"고 희롱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같이 22사단 부대 내에 벌어진 가혹행위 내용은 K일병이 수첩에 남긴 메모에 쓰여진 것으로 추가피해도 확인중이라고 군인권센터가 설명했다. 

K일병은 지난 14일 이같은 피해 사실을 면담을 통해 부소대장에게 보고했다. 부대는 K일병을 '배려병사'로 지정하고 GOP투입에서 배제했다. 그럼에도 괴롭힘이 계속되자 K일병은 19일 치과 진료를 위해 국군수도병원을 찾아 함께 온 동료에게 "도서관에 두고 온 것이 있어 가져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7층 도서관으로 올라가 오후 4시경 열람실 창문을 통해 투신해 사망했다.

군인권센터는 “부대가 취한 조치는 K일병을 ‘배려병사’로 지정하고 GOP 투입에서 배제한 것뿐”이라며 “부대는 5일이 지나도록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지 않았다. 가혹행위가 벌어지는 현장에 피해자를 방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려병사로 지정된 K일병이 국군수도병원으로 외진을 나갈 때, 군 간부의 인솔 없이 동료 병사 가족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는 점이 확인될 경우, 22사단은 병사 관리 소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22사단 측은 유족들에게 사건 초기 브리핑을 하며 부대 관리 책임을 '실수'라고 표현했다. 또한 유족들이 K일병의 유품인 유서와 수첩 등을 요구하자 수사자료라고 거부한 데 이어 사진 촬영도 못하게 했다.

군인권센터는 “병영부조리 대응의 기본 원칙인 피해자-가해자 분리조차 지키지 않았고 피해자를 방치했다는 것은 사단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며 “지난 사건들로부터 아무런 반성도, 교훈도 얻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K일병 사망 사건은 막을 수 있었던 사고다. 피해 사실을 신고했음에도 피해자가 택할 길이 죽음 밖에 없는 상황을 부대가 조성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군인권센터는 정부 차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센터 측은 문재인 정부는 국방 개혁의 의지를 천명하며 병영 내 부조리를 근절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고, 송영무 국방장관 역시 취임 시 부모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선진 병영문화를 이끌어 가겠다고 선언한 점을 들어 ‘군의 자폐증’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센터 측은 “육군은 또 다시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며 고질적인 병폐를 드러내고 있다”며 “매 번 사건이 발생함에도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군의 자폐증을 고치지 않는다면 국방 개혁은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센터 명의로 ▲ 가해자 즉각 구속 및 엄중 처벌 ▲ 육군 제22사단장 보직해임 및 중징계 ▲ 군 당국은 망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유품을 유족에 반환할 것 ▲ 육군 전사망심사위원회는 K일병을 순직 처리할 것 등을 요구했다.

육군 22사단은 2014년 GOP 총기난사 사건에 이어 지난 1월에도 얼굴에 구타흔을 가진 일병이 휴가 복귀 직후 자살하는 사고가 발생한 곳이라는 점에서 비극이 재발한 것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월 22사단에서는 휴가를 다녀온 H일병이 복귀 당일 부대 내에서 목을 매달에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H일병의 시신에서는 구타 흔적과 함께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책과 함께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앞서 2014년엔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이 22사단 GOP에서 발생해 충격을 던진 바 있다. 임모 병장이 총기 난사를 일으킨 사건으로, 그는 평소 부대에서 구타·가혹행위와 따돌림을 당해 오다가 전역 3개월을 앞둔 상황에서 따돌림 등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임 병장은 수류탄을 터뜨리고 총기를 난사해 12명의 사상자를 낸 뒤 달아났고 도주 과정에서 총기 자살을 시도했으나 심장을 빗맞아 사망하지는 않았다. 대법원은 "전우에게 총격을 겨눈 잔혹한 범죄 사실이 인정된다"며 임 병장에게 사형을 선고한 바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한 날, 대국민 정책 콘서트에서 국방개혁의 하나로 ‘장병 인권 및 복무여건 개선’을 꼽은 날, 육군 22사단의 K일병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철저한 사건 조사만이 병사들의 인권 개선과 국방개혁의 초석을 다지는 길이 될 것이다.

박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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