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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4연임 성공 원동력, '철'보다 '엄마'는 강했다

  • Editor. 조승연 기자
  • 입력 2017.09.2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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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조승연 기자] 그는 “나의 소녀”라고 불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촌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집권한 국가 지도자 중 최장수 정부 수반(1982~1998년)으로 남아 있는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는 그 소녀를 발탁했다. 독일 통일의 주역인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격랑의 통일 독일 사회에서 동독의 물리학자를 발탁했다.

앙겔라 메르켈(63).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던 날 친구들과 사우나에 있었던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고 그 다음달 동독 민주화운동단체 민주개혁에 가입했던 동독 출신의 과학 엘리트다. 콜 총리에게 전격 발탁돼 통일 내각의 여성청소년부 장관에 오르며 정치의 길로 들어선지 16년.

‘콜의 양녀’로 불렸던 메르켈은 이제 유럽 정치사를 새롭게 쓰게 됐다. ‘정치의 아버지’ 콜 전 총리의 재임기간과 같은 16년의 최장수 총리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24일(현지시간) 독일 총선 투표가 끝난 뒤 공영방송 ARD의 출구조사 결과, 메르켈 총리는 4연임에 성공할 것으로 확실시됐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집권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의 예상 득표율이 32.5%로 집계돼 총선 승리가 유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메르켈 총리의 경쟁자인 마르틴 슐츠 후보가 이끄는 사회민주당은 득표율 전망이 20.0%에 그쳤다. 반(反)난민·반이슬람을 지향하는 신나치 성향의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13.5%의 득표율이 예상돼 제3정당이 유력하다.

메르켈 총리는 2013년 총선에서 41.5%의 지지율을 얻어 3연임에 성공했던 것과 비교하면 비록 4연임 성공에는 지지율도 낮았지만 극우정당의 첫 연방의회 진출을 허용하는 등 지지층 확대에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AP통신, BBC 등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민족주의적 유권자들의 우려를 경청할 것”이라며 “우리는 좋은 정책을 통해 AfD 유권자를 되찾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정책을 통한 포용 약속은 메르켈이 이번에 상처를 입고도 4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국민이 공감하는 깨끗한 정치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정책적으로는 반대포를 포용하는 실용주의자가 메르켈 총리다.

자신을 등용했던 콜 전 총리가 총선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에게 패해 5연임에 실패한 뒤 비자금 스캔들에 휩싸이자 당내에서 모두 침묵을 지켰을 때 메르켈은 정계를 떠나라고 당당히 요구했다. 당시 콜은 “내가 암살자를 데려왔다"고 후회했고, 몇 개월 뒤 메르켈은 1999년 당 대표에 올랐다.

11년간 영국을 이끌었던 ‘철의 여제’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를 연상케 하는 메르켈의 뚝심도 정치적 동력이었지만 무엇보다 ‘무터(엄마) 리더십’으로 다당제의 독일 정치계에서 연정을 통한 협치를 주도해온 것이 콜의 반열에 오르는 밑거름이 됐다. 양 극단의 주장을 배제하면서 합의에 기초해 화합을 이끌어내는 게 메르켈 정치의 요체다.

메르켈은 중도우파 노선을 유지하면서도 좌파의 정책을 적절한 시기에 수용해 ‘학습기계’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다. 예를 들어 지난 7월 중도좌파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이 연정의 조건으로 동성 결혼 허용 법안을 내걸었을 때다. 메르켈은 법안 표결을 결정한 뒤 자신은 반대표를 던졌고 법안은 협치의 결과로 통과됐다.

소신을 지키면서도 연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접점찾기 행보가 메르켈의 장수를 뒷받침해온 것이다. 양성평등 정책, 징병제 폐지, 가정복지 강화 등도 좌파 정당의 주장들을 포용한 사례로 꼽힌다. 정책적인 실책에도 그 실수를 인정하면서 배우는 ‘실패학’의 표본으로서 독일 정치의 구심점을 잡아온 메르켈이다.

라이벌 슈뢰더 전 총리가 추진한 '어젠다 2010’ 정책을 이어받아 경제개혁을 추진, 2005년 11.7%에 달하던 실업률이 현재 완전고용 수준으로 불릴만한 3.7%까지 낮췄다. 메르켈 총리는 2015년 슈뢰더 전 총리의 전기 출판 기념식을 찾아 “슈뢰더의 헌신은 경제ㆍ복지 개혁으로 독일의 성공에 큰 도움을 줬다”고 헌사를 보내기도 했다.

에너지 정책에서도 메르켈은 유연한 선회를 택했다. 물리학자인 메르켈은 효율적인 측면에서 원자력을 맹신, 슈뢰더의 원전 축소 정책을 비판해왔다. 그러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자 방향을 급선회, 2022년까지 원전 종식을 선언하면서 그린 에너지로 대체 플랜을 마련했다. ‘에너지 전환’으로 불린 이 정책 전환은 독일 국민의 큰 호응을 불렀다.

메르켈의 4연임 성공으로 국제사회에서는 미국, 러시아 대통령 등 ‘스트롱맨’들의 주도를 견제하고 중개할 수 있는 경륜 있는 지도자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분위기다.

한국과도 돈독한 협력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첫 양자 정상 외교의 현장으로 독일을 선택했고 메르켈 총리도 크게 환대했던 터다. 당시 메르켈 총리는 지난 7월 총리실에서 만찬회담이 끝난 뒤 문 대통령이 독일 동포들로부터 환영받는 현장까지 이례적으로 따라나와 옆을 지키며 함께 손을 맞잡았던 장면도 한국민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독일과 러시아 침략의 피해국인 폴란드인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고 출생 직후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동독으로 이주했던 분단의 아픔까지 체험했던 메르켈 총리이기에 요즘같이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대북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개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뜻도 보여왔다. 그렇기에 한독 관계는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탈원전을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에도 메르켈 총리의 에너지 전환 정책뿐만 아니라 다당제 정국에서의 협치 정신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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