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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희가 소환한 페미니스트, 그리고 솔닛의 한국 페미니즘 해석

  • Editor. 조승연 기자
  • 입력 2017.09.2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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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조승연 기자] 빅뱅 탑과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지 나흘 만에 가수 연습생 한서희가 활동을 재개하면서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해 주목을 끌고 있다.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등을 선고받았던 한서희는 지난 20일 2심서도 같은 형량을 선고받았다.

그러더니 24일 자신의 SNS를 통해 4인조 그룹으로 내년 1월 복귀 예정 사실을 밝히며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유명해지길 원하지 않는다. 지금 제가 화제인 걸 이용해 페미니스트인 걸 알리고 싶다. 나로 인해서 페미니스트임을 솔직하게 밝히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당당한 여성분들이 많아지길 바란다"라는 바람을 펼쳐보였다.

한서희 페미니스트 선언에 지지글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출처=한서희 인스타그램]

한서희의 페미니스트 발언이 시기적으로 적절했느냐 하는 논란도 없지 않지만 연예계에서 오랜만에 페미니스트란 단어가 소환된 것에는 관심이 높았다. 앞서 한서희는 지난 12일에도 더 많은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고, 이틀 뒤에는 페미니즘 도서 '나쁜 페미니스트' 인증샷을 SNS에 게시하기도 했다.

이후 여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서희의 페미니스트 선언에 대한 지지 글이 이어졌다. 각종 범죄로 사회적인 충격을 던진 뒤에도 남성 연예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방송을 타는데 여성 연예인이라고 해서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취지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에 한서희조차도 놀라면서 25일 SNS에 “앞으로도 많은 여성분들이 더 당당하게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한서희가 어떤 생각을 기반으로 페미니스트임을 주장하는 지는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킨 뒤 페미니스트라고 공개 선언하는 사례 자체가 드문 것은 여전히 페미니즘에 대한 공감이 넓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5년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칼럼이 논란을 부르자 바로 SNS 상에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다. 

여성이 선택의 권리를 지녀야 한다는 원칙 아래 성차별주의와 그 차별성에 기반한 각종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 흑인여성운동의 대모이자 페미니스트 작가인 벨 훅스가 ‘행복한 페미니즘’에서 이렇게 정의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은 다양한 시각에서 젠더 평등 담론을 펼쳐왔고 당당한 행동으로도 결집을 보여주기도 했다.

국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터져나오는 여성 비하, 여성 혐오 등 성 차별 현상은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으로 편견의 기울기가 많이 바로잡히는 성과도 있었지만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출신 페미니스트 문화예술비평가인 리베카 솔닛이 최근 내한해 한국의 페미니즘에 대한 견해를 밝혀 국내 페미니스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솔닛은 '맨스플레인(mansplain)'이란 개념으로 젠더 불평등의 정곡을 찌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를 합친 이 합성어는 ‘내가 많이 안다’며 설명을 가장해 남성이 여성들을 시시콜콜 훈계하는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을 깨우는 핵심 유행어가 됐다.

예술, 환경, 인권 등 전방위적인 주제를 다루며 페미니즘의 지향점을 제시해온 솔닛이 2010년 한 칼럼에서 처음 사용한 이 맨스플레인은 뉴욕타임스 '올해의 단어'로 선정됐고, 2015년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등재됐다. 이 개념의 사례를 담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한다’는 책이 국내에서도 발간되면서 페미니즘 책 열풍을 몰고오기도 했다.

지난달 25일 창작과비평이 마련한 첫 방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솔닛은 "페미니즘은 인간 세상 전체를 바꾸려는 노력"이라는 지론을 펴면서 "수천 년간 계속된 여성차별의 문제를 50년 사이에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좌절해서는 안 된다. 큰 그림을 볼 때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를 볼 수 있다"고 역설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여성 BJ에 대한 살해 위협 등 한국의 여성 혐오 현상과 그에 대한 사회의 반응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솔닛은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는데 페미니즘이 힘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에서 벌어진 상황들이 낯설고 기이한 것이었으면 좋겠지만 이런 일들은 미국에서도 비슷하고 친숙하다"며 "남성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이고, 반발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페미니스트들의 일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해석했다.

국내에서 파문을 낳은 여성 혐오 사건 등에 대한 대응책으로 솔닛은 "사안을 정확하게 규정하고 올바른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를 던졌다. 현상을 아주 명쾌하게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해주고 절대 용납할 수 없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성 폭행 피해 여성들이 피해를 호소할 때 그들의 탓으로 돌리거나 서로 상관없는 개별적인 사건인 것처럼 치부해왔던 것을 타파하고 각각의 일들이 일정한 패턴으로 연결돼 있음을 알리는 캠페인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말함으로써 추방당하고 억압받을 것 같은 여성의 두려움, 이를 뚫고 기어이 말하고자 나선 사람을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어떻게든 침묵시키려는 세력, 그리고 말하는 사람의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세력이라는 구조의 패턴을 거듭 지적한 것이다.

솔닛은 "제가 더 젊었던 시절에는 페미니즘 자체가 여성들이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규정됐지만 성차별 문제 해결은 여성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해방이기도 하다"며 "역사를 돌아봤을 때 한국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우리가 승리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여성들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솔닛의 해석처럼 남성들이 반발할수록 페미니스트들의 성공은 점점 다가온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했다. 한서희의 당당한 페미니스트 고백에 자숙만을 강요하면서 설명하려드는 남성들이 있다면 그 자체도 조그마한 성과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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