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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수 대전시티즌 감독 깜짝 선임, ‘원조 히딩크 황태자’부터 ‘리니지폐인’ 오해까지

  • Editor. 박상욱 기자
  • 입력 2017.11.2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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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박상욱 기자] 현재 ‘히딩크 황태자’가 누구였냐는 질문에 많은 이들은 아마도 2002년 한일월드컵 포르투갈 전에서 결승골을 넣고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안겼던 박지성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원조 ‘히딩크 황태자’는 박지성 이전에 고종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원조 히딩크 황태자’였던 고종수(39)가 그로부터 16년이 흘러 대구시티즌 감독으로 돌아와 축구팬들의 마음을 오랜만에 설레게 하고 있다.

대전시티즌은 24일 고종수 수원삼성블루윙즈 코치를 감독에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대전시티즌은 “지역 축구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으며, 여러 후보군을 두고 고심을 거듭한 끝에 고종수 감독을 선임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고종수 감독은 한국축구사에서 손 꼽히는 테크니션으로 통한다. ‘축구천재’ ‘왼발의 명수’ 등 수식어로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한국 축구계를 휘어잡았다. 안정환, 이동국과 함께 프로축구 르네상스를 열기도 했던 주역이다.

고종수는 현역선수 시절 1996년 수원삼성에 입단한 후,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대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국가대표, 2000년 시드니 올림픽대표로 활약했다. 특히 1997년 1월 국가대표로 발탁된 뒤 그해 1월 25일 득점을 해 한국축구 A매치 최연소 득점(18세87일)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부임한 히딩크 감독의 총애를 받아 ‘히딩크 황태자’로 불리며 국가대표 주전을 꿰찼다. 하지만 2001년 경기 도중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겪으면서 2002년 대표팀에서 탈락하는 비운을 겪게 됐다.

히딩크 감독은 당시 고종수를 뺀 국가대표팀 명단을 발표한 자리에서 “고종수는 놀라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무척 아끼는 선수”라며 “놀라운 개인기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극찬했다.

하지만 고종수는 부상 후 예전 기량을 회복하지 못한 채 2003년 일본 교토 퍼플상가로 이적했다. 2006년 전남 드랜곤즈를 통해 국내에 복귀했고, 이듬해 대전시티즌으로 이적한 후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고종수가 과거 명성만큼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자 ‘리니지 폐인’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이 오해의 발단은 고종수가 2014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여가생활을 묻는 질문에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한다고 답하면서 시작됐다. 온라인에서는 ‘고종수가 리니지의 사이버 머니 ’아덴‘으로 연봉을 받는다’ 등 루머들이 돌기도 했다. 고종수는 “정말 말도 안 된다”며 해당 루머를 일축했다.

고종수가 감독으로 대전시티즌에 돌아오면서 사제지간인 김호 대표와 재회도 특별한 관심을 끌고 있다. 1996년 김호 수원삼성 창단 감독이 고종수를 발탁해 최고의 미드필더로 키운 스승이다. 그후 대전 감독으로 부임한 김호는 고종수를 다시 불러와 K리그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다. 김호 대표는 고종수 감독이 피치에서, 자신은 프런트에서 합심한다면 대전의 성장이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축구 최고의 테크니션, 원조 ‘히딩크 황태자’ 고종수가 대전 감독으로 돌아오면서 과거 그의 현역 시절 화려했던 플레이로 눈을 즐겁게 해준 기억을 떠올리는 많은 축구팬들을 들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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