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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기업은] 민지(MZ)가 주인공, 더 젊어진 마사회 (上)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3.11.1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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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에게 삶의 이야기가 있듯, 기업에도 탄생부터 지금까지 일궈온 역사와 앞으로 만들어 갈 스토리가 있습니다. 기업은 멀리 떨어진 주체가 아닌, 우리 일상 곳곳에 녹아 있는 동반자입니다. 우리 중 누군가는 기업에 몸담고 있고, 다수는 기업이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누리고 있죠. [지금 우리 기업은]은 그런 기업의 이야기, 이모저모를 듣고자 마련했습니다. 대한민국의 한 축을 떠받치는 이들 이웃의 이야기, 함께 들어볼까요. <편집자주>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어 그래. 들어와. 달리라고. 좋은 말을 데리고 아주 피똥을 싸네. 간다. 간다. 왔어.”

2021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성기훈 역을 맡은 이정재 배우가 경마장에서 경마를 보며 과격하게 내뱉는 대사다. 해당 장면을 보면 경마 게임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 든 아저씨들이다.

비단 오징어 게임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 등 지금까지 미디어에 노출된 경마장 모습은 ‘젊음’과 거리가 꽤 멀게 묘사된다. 뿌연 담배 연기 속 나이 지긋한 중장년들이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이 쉽게 그려진다. 이 때문인지 한국마사회 이미지 역시 딱딱하고 올드한 이미지가 이어지곤 했다. 하지만 요즘 경마장과 마사회에 젊은 바람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경마장과 마사회 이미지는 과거와 비교해 어떻게 달라졌을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렛츠런파크 서울 놀라운지 게이트 [사진=김준철 기자]
렛츠런파크 서울 놀라운지 게이트 [사진=김준철 기자]

■ 민지(MZ) 놀이터 렛츠런파크 놀라운지

지난달 기자가 방문한 경마 시설 공원 렛츠런파크 서울은 중장년층 전유물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물론 여전히 주 고객은 중장년층이 다수였지만,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 세대)들도 적지 않은 숫자가 렛츠런파크 서울을 찾은 것이다. 커플과 친구, 젊은 가족 단위 고객을 목도할 수 있었다.

MZ세대가 중장년층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놀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은 ‘놀라운지’다. 입구부터 ‘20·40만의 놀라운 플레이 공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놀라운지는 2016년 1월 렛츠런파크 서울에 새롭게 개장한 디지털 놀이 공간이다. 2014년부터 기획된 이 공간은 젊은 고객의 발길을 잡을 목적으로 다채로운 즐길거리와 볼거리로 구성됐다. 개장 후 10주 간 누적 방문객 수 1만2000명을 넘기며 20·30 세대 놀이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시간이 흐르며 연령대를 40대까지 포함하게 됐고, 경기가 있는 주말엔 이용 연령을 제외한 고객 입장은 금지된다.

실제 놀라운지 출입을 위해선 신분증 검사를 받아야 한다. 신분증 검사가 끝나면 직원이 인증서로 팔찌를 채워준다. 입장을 완료하면 MZ세대 놀이터가 펼쳐진다. 미성년자 동반 입장과 체류도 가능해 어린 아이들도 부모 손을 잡고 놀라운지를 즐길 수 있다. 실내엔 여러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편의점이 있고 휴게 공간도 많아 쾌적한 관람이 가능하다. 또 야외에도 의자와 테이블이 세팅돼 있어 데이트 삼아 온 커플들과 나들이 온 가족들에게 인기가 높다.

놀라운지 한쪽엔 초보 경마 교실이 자리하고 있다. 초보 교실은 주말 각 8회씩 열리는데, 경마를 처음 접하는 젊은 세대에게 기본적인 경마 상식을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또 건전하게 경마를 즐기는 방법도 교육 내용에 포함된다. 고객이 과몰입하지 않고 안전하게 경마에 참여하도록 돕고, 전자카드를 활용해 구매 한도를 지킬 수 있도록 안내한다. 점심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MZ세대 20~30명이 교육을 이수하기 위해 무료 강의를 들었다. 강사가 동영상과 사진을 활용해 쉽게 경마 게임을 설명해 주고, 강의 중간중간 퀴즈를 내고 선물을 증정하며 MZ세대 흥미를 유발한다. 수강생들은 경품을 받기 위해 질문에 손을 들고 답하고, 퀴즈를 맞혔을 때 손뼉을 치는 등 열띤 수업 태도를 보였다.

응원 문화와 게임을 즐기는 모습에서도 젊은층에서 더욱 더 유연한 반응이 나온다. 마사회는 현재 대상 경주와 일부 일반 경주 시행 직전 특별 제작한 응원 전용 애니메이션과 음원을 가로 127.2m, 세로 13.6m 대형 전광판인 비전127에 송출해 응원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주로 놀라운지에 있는 관람객 얼굴이 스크린에 담기고, 화면에 나온 MZ세대들이 춤을 추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또 경주 중에도 환호하고 응원 깃발을 흔들며 기수와 경주마를 응원한다.

비교를 위해 중장년층이 주를 이루는 공간인 3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게임 도중 열렬한 응원 열기는 비슷했지만 걸쭉한 비속어가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빈도수가 높았다. 일부는 화를 참지 못하고 경마 예상지를 구기거나 마권을 찢기도 했다.

마사회는 경마일마다 다양한 응원 행사 프로그램과 공연을 기획해 흥겨운 관람 문화를 정착시키고 경마 현장을 축제의 장으로 조성해 나가고 있다. 지난 3월엔 3주 동안 주말마다 ‘이길랑 말(馬)랑 응원 페스티벌’을 열었다. 전문 MC와 함께하는 나만의 응원 깃발 만들기 체험, 단체 응원전, 댄스 타임, 레크리에이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더불어 젊은 고객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지난 4~5월엔 각각 벚꽃축제, 뚝섬배 대상 경주 등 빅 이벤트와 연계하는 등 응원 문화 정착을 위해 응원 페스티벌을 정례화해 추진 중이다.

렛츠런파크 서울 놀라운지 초보 경마 교실 [사진=김준철 기자]
렛츠런파크 서울 놀라운지 초보 경마 교실 [사진=김준철 기자]

이쯤 되면 국내에서 경마에 대한 부정적이고 올드한 인식을 바꾸는데 놀라운지가 한 몫 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렛츠런파크 서울 놀라운지를 방문한 가족 단위 방문객 A(35)씨도 “젊은층을 위한 공간이 생기고 나서 가끔 방문한다”면서 “편의 시설이 잘돼있어 단순히 경마만 즐기는 게 아니라 주말 나들이를 하기에도 좋다. 주위에도 비슷한 또래와 대학생, 사회 초년생들이 많아 어둡지 않은 분위기다. 경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는데, 놀라운지를 따로 만들어 가족들과 함께 와 볼 만 하다”고 말했다.

■ 민지(MZ) 위한 마사회 조직 문화 변신

그러나 렛츠런파크에 MZ세대가 많이 방문하는 것만으로 마사회가 젊어졌다고 하기엔 비약이 있다. 마사회를 바라보는 일각의 시선은 곱지 않다. 과거부터 ‘철밥통’ 이미지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돈이 벌리니 직원들이 소위 고이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 젊은 직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실제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의 한국마사회 직원 평균 보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 정규직 평균 근속 개월은 227개월로 연으로 환산했을 때 약 19년이 된다.

렛츠런파크 서울 응원 페스티벌 현장 [사진=한국마사회 제공]
렛츠런파크 서울 응원 페스티벌 현장 [사진=한국마사회 제공]

따라서 최근 젊은 조직 문화 혁신 등의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은 자연스레 생긴 것이 아니라 마사회 내부에서 끊임없는 혁신 움직임의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정기환 회장이 MZ세대 직원 소통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이어가는 중이다. 정 회장은 지난 6월 본부별 MZ세대 실무 직원 7명을 본사로 초대해 오찬과 함께 캘리그라피를 배워보는 ‘공감 소통 데이트’를 진행했다. 공감 소통 데이트는 핵심 가치를 선도한 MZ세대 실무자들과 원데이 클래스를 체험하는 시간이다. 초청 직원들은 MZ세대답게 대화를 주도하며 업무 시 느꼈던 보람 및 경영 현안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여름철 건강 관리법 등 일상적인 대화도 회장과 주고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정 회장은 주기적으로 사내 라이브 방송에 출연해 젊은 직원들과 격의 없는 소통의 시간을 갖고 있다. 지난 9월에도 마사회 경영 철학과 가치, 비전 등을 주제로 젊은 직원들과 활발한 소통을 가졌다. 실시간 채팅방에서도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 문화를 향한 최고 경영자(CEO)의 진심과 노력이 느껴진다”는 긍정적 의견이 주를 이뤘다.

정기환 회장이 일선에서 노력하자 조직 전반적으로 MZ세대를 주력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조직 내 MZ세대 역할이 중요하고, 다양한 직급과 세대가 공존하는 만큼 마사회 조직 문화 또한 변화에 직면하게 됐는데 시대 흐름을 빠르게 읽어낸 모습이다.

대표적인 예가 ‘주니어 보드’다. MZ세대 직원 중심으로 주니어 보드를 신설해 MZ세대 직원의 활발한 경영 참여를 통해 다양한 기관 혁신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조직 문화 개선 의견을 발 빠르게 반영하고자 했다. 올해는 Z세대 직원으로 구성된 주니어 보드(Zunior Board)를 통해 요즘 문화와 핵심 가치를 접목해 자연스러운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익명 카톡방을 활용한 블라인드 공청회는 제언 이후 실제 이행됐고, 임직원의 경영 제의에 기관장이 실시간으로 답변하면서 업무 시너지 증진과 조직 화합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또 지난해엔 한국 경마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발족식을 개최했는데, 위원회에선 MZ세대를 대표하는 직원을 공동 위원장으로 선임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마사회는 이를 통해 경마 100년을 알리는 주요 사업을 의결하는데 젊은 직원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더욱 더 추진력을 얻겠다는 방침이다.

정기환 한국마사회 회장(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지난 6월 MZ세대 실무 직원들과 공감 소통 데이트를 진행했다. [사진=한국마사회 제공]
정기환 한국마사회 회장(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지난 6월 MZ세대 실무 직원들과 공감 소통 데이트를 진행했다. [사진=한국마사회 제공]

아울러 유튜브도 MZ세대 직원 얘기를 풀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국마사회 경마방송 KRBC는 지난달 ‘MZ오피스 in 공기업, 입사 하자마자 퇴사각’이라는 영상을 발표하고, 신입사원들이 직장에서 벌어지는 해프닝과 적응기를 콘텐츠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마사회는 MZ세대 사이에서 이미지가 바뀌는 중이라고 평가받는다. 마사회에 따르면 소통 채널의 신설로 상하 간 수평적 소통 인식도가 지난해 대비 향상됐으며, 조직 문화 만족도 역시 지난해 대비 9.5% 향상됐다고 밝혔다. HR테크 기업 인크루트가 지난해 대학생 1044명을 대상으로 ‘2022 대학생이 뽑은 가장 일하고 싶은 공기업 톱10’을 선정했는데, 마사회가 5위에 이름을 올린 건 조직 내부의 민지, 마사회를 바라보는 민지 모두에게 젊은 조직이라고 인정을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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