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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투어] ⑳해파랑길 마지막장, 화진포와 통일전망대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4.03.2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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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마다 걷기 여행을 하고자 합니다. 요즘 걷기 여행이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충 둘러보고 돌아서는 관광은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모든 감각을 통해 직접 수집된 오감만이 유일하게 진정한 관광으로 여행자를 인도합니다. 길 위에서 게으르게 움직이며 풍경과 세상사를 느껴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사유하고 재발견하고자 하는 여행자의 수요도 점차 늘어나는 중입니다. 천천히 구석구석 걷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여행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해파랑길’은 우리나라 동서남북을 잇는 코리아 둘레길의 동해안 구간으로, 부산광역시 오륙도 해맞이 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750km의 장거리 걷기 여행길이다. 해파랑이라는 명칭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로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22년 12월 ‘2022 걷기 여행 실태조사’를 발표했는데 해파랑길이 2022년 걷기 여행자가 선택한 국내 걷기 여행길 중 1위로 꼽혔다. 인지도 면에선 34.7%의 이용자가 해파랑길을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방학, 휴가, 연휴 등을 맞아 해파랑길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몰려들 정도로 그 인기는 엄청나다.

해파랑길 고성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해파랑길 고성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 49코스 : 12월 16일 고성 지리적·역사적 특성을 느끼다(거진항~통일안보공원 12.3km)

거진항을 출발해 항구 뒤편 거진 등대를 거쳐 간다. 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거진 해맞이봉 산림욕장을 걷는다. 언덕 위 데크 계단을 오르기 전 커다란 벽화 위에 ‘거진 미항’이라고 쓰여 있다. 데크 위에 올라가 보니 이른 아침 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한껏 느껴진다. 미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응봉까지 가는 산길이 그리 만만치 않다. 나무에 시야가 가려 항구 모습도 서서히 보이지 않게 된다. 그나마 거진 등대와 거진 해맞이봉 산림욕장 2층 전망대를 올라가면 푸른 바다가 눈 아래 깔린다. 중간 중간 십이지신상과 마을 기관 직원들이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조각 작품들이 지루함을 가시게 만든다.

응봉에 도착해 보는 풍경은 산길을 헐레벌떡 걸어온 보람을 갖게 한다. 응봉에서 진행 방향을 보면 거대한 8자 모양을 가진 화진포가 보인다. 탁 트인 시야와 잔잔한 화진포, 높은 산이 한데 잘 어울린다. 날이 맑은 덕분에 멀리 금강산 비로봉도 보인다. 응봉은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와 호여사 부부가 방문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총리 부부는 숲길에서 찍은 호수 모습을 올리고 ‘화진포는 아름다운 해변과 고요한 호수를 간직한 곳’이라고 설명했고, 이로 인해 싱가포르 단체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계기가 됐다. 해발 122m밖에 되지 않지만 해안부터 걸어서인지 상당히 높은 산을 넘은 것 같은 느낌이다. 허리를 펴고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절경을 한참 바라본다. 화진포와 바다까지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응봉을 떠나기엔 아쉽지만 일정을 생각해 내리막을 밟는다.

거진항 [사진=김준철 기자]
거진항 [사진=김준철 기자]

응봉에서 화진포 쪽으로 내려오면 마주치는 건물은 ‘김일성 별장’이다. 왜 김일성 별장이 38선 아래 있는지 궁금했는데 안내 설명을 읽으니 이해가 된다. 본래 이곳은 ‘화진포의 성’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원산에 있던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킬 때 당시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가 독일 망명 건축가에게 의뢰해 이곳에 건립한 것이다. 그런데 1945년 해방 이후 고성군 지역이 38선 이북 지역에 속하게 되면서 1948년 김일성이 이곳에 자신의 휴양지를 마련해 2년간 휴양을 즐기게 됐다고 해 김일성 별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후 한국전쟁 후 고성군 지역이 남한 지역으로 편입하게 되면서 일반인에게도 개방했고, 안보 전시관, 기록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해파랑길을 걸으면서 지식을 또 하나 채워 넣는 기쁨을 누린다. 많은 사람이 옥상에서 전망을 감상하고 있다.

별장을 내려오면 화진포 해수욕장과 화진포가 나온다. 화진포 해수욕장엔 사람들이 몰려 있다. 커다란 주차장은 자동차로 직접 찾아온 사람들, 버스를 대절해서 단체 관광으로 온 사람들, 주변 산을 오른 등산객들 등 각양각색이다. 여행객들은 해수욕장에 설치된 고성 명태 조형물과 수평선을 배경 삼아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인파가 빠지고 나서야 여유롭게 해변을 구경한다. 오랜 세월 동안 조개껍데기와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모나자이트 성분의 완만한 백사장이 흰 빛깔을 뽐내고 맑고 잔잔한 바닷물이 인상적이다. 해파랑길은 화진포 생태 박물관 방향으로 이동해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응봉에서 본 화진포 [사진=김준철 기자]
응봉에서 본 화진포 [사진=김준철 기자]

화진포는 둘레 16km에 면적 2.3㎢으로 국내에서 가장 큰 석호다. 담염호(淡鹽湖)로 도미·숭어·연어·향어 등 어족 자원이 많아 낚시터로 유명하고, 철새 도래지로도 많이 알려져 겨울이면 고니 수천 마리가 날아든다. 말 그대로 ‘백조의 호수’를 연상케 하는 셈이다. 화진포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과 갈대 숲 속에 풍부한 먹이가 있어 철새들에게 알맞은 휴식처가 된다. 날이 추워 새들도 더 따뜻한 곳으로 숨었나 하고 생각할 찰나 저 멀리 갈대숲에서 고니 한 마리가 푸드덕하고 날아가는 모습을 목도한다. 이전 코스 송지호와 유사하게 화진포도 탄생 설화가 인상적이다. 요약하자면 이곳에 ‘이화진’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성질이 고약해 시주를 받기 위해 찾아온 스님에게 소똥을 한가득 넣어 골탕 먹였다. 이를 본 마음씨 착한 며느리가 용서를 빌며 시주를 하러 따라갔고 승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전했다. 잠시 후 갑자기 큰 소리가 나자 며느리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고, 하늘에서 폭우가 마구 쏟아지며 이화진이 살던 집과 논밭이 순식간에 호수로 변한 것이 화진포가 됐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화진포 끝으로 오면 다시 해변이 나오고 바다 가운데 금구도(金龜島)가 떠 있다. 화진포 앞바다에 위치한 무인도로 화진포 쪽에서 바라보면 섬 형상이 거북과 같이 보여 금구도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실제 조그마한 바위섬이 팔, 다리를 이루고 있고, 등딱지가 볼록한 게 영락없는 거북 모습이다. 고구려 연대기에 따르면 394년 화진포 거북섬에 왕릉 축조를 시작했으며 414년 거북섬에 광개토대왕 시신을 안장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광개토대왕릉이 금구도에 있다는 설이 제기됐다. 일각에선 고구려 지명 중 ‘홀(忽)’이 붙은 곳은 왕릉 혹은 왕비릉이 있는 곳이라는 주장이 더해져 과거 ‘가라홀(加羅忽)’과 ‘달홀(達忽)’로 불렸던 이 지역에 광개토대왕릉이 있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한편, 다른 한편에선 유사 역사학자의 주장을 전설로 둔갑해 홍보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화진포 [사진=김준철 기자]
화진포 [사진=김준철 기자]

초도항은 화진포에서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작은 항구로 성게가 특산물이다. 성게 마을로도 불리기 때문에 초도항 입구 간판도 성게 모양이다. 성게 철에는 마을 주부들이 항구를 지나 있는 수산물 시장 안 성게를 까는데 바쁘다고 한다. 실제 항구를 돌아서 가면 성게 껍데기가 바닥에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다. 초도 해수욕장은 푸른 바다와 흰 모래사장, 주변에 자라는 푸른 소나무가 어우러져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평화로움과 힐링을 선사한다. 주변 카페에서 커피를 뽑아 들고 모래사장을 사뿐사뿐 밟는다.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니 해파랑길에서만 세 번째 만나는 대진항이 나온다. 경북 영덕과 강원 동해에서 이미 같은 이름의 항구를 만났다. 이름답게 큰 크기의 항구를 자랑한다. 우리나라 최북단 항구로 국가 어항으로 관리되고 있다. 수산 시장도 현대화된 건물로 지어졌고, 음식점과 버스 터미널 등 시내 거리가 번창하다. 항구에는 조업을 끝내고 돌아온 많은 어선이 정박해 있다. 아침이면 밤새 잡은 수산물을 실은 어선들이 항구로 들어와 위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항구 시작점엔 바다를 향한 해상 공원도 조성해놨다. 공원이라기엔 볼품없으나 몇몇 조형물이 구색을 갖추고 있고, 항구 앞바다에 떠 있는 형형색색 테트라포드가 눈에 띈다.

대진항을 돌아가면 대진 등대가 나온다. 등대는 등탑이 팔각형 콘크리트로 이뤄져 있고, 등탑 위 전망대에 올라서면 환상적인 일출과 석양을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 시설도 있는 것 같은데, 개방을 하지 않은 듯 인기척이 없다. 산책로를 내려와 마주한 대진1리 해수욕장은 활처럼 휘어진 백사장으로 수심이 깊지 않아 해수욕하기 좋은 곳으로 알려졌다. 이번 코스 종착지 격인 금강산 콘도가 곧 손에 잡힐 듯하다. 콘도 옆엔 좁은 모랫길로 연결된 무송정이라는 섬이 있다. 무성한 소나무가 있어 이름이 유래된 것 같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무송보원군 윤자운이 사절을 받들어 관동 지방에 왔다가 일찍이 이 섬에 올라가며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대진 해변 입구는 상시 개방하나, 금강산 콘도가 있는 마차진 해변은 군 작전 통제 구역에 속해 있어 무송정만 눈에 담고 통일안보공원으로 향한다.

대진항 해상공원 [사진=김준철 기자]
대진항 해상공원 [사진=김준철 기자]

■ 50코스 : 12월 16일 해파랑길에서 보는 가깝지만 먼 곳(통일안보공원~통일전망대 10.9km)

이번 코스는 도보 이동이 불가하다. 정확하게는 통일안보공원부터 제진검문소까지만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고, 이후부터는 차량으로 이동해야 한다. 통일전망대까지 가는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에 개인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데, 택시를 부르려면 통일안보공원에서 불러야 해 걷기 여행은 여기서 마치게 된다. 부랴부랴 택시를 부르고 그제야 통일안보공원을 둘러본다. 통일전망대로 올라가기 전 교육을 듣는 곳인 안보교육관이 출입신고소 본 건물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있고, 평화의 종과 몇몇 조형물이 심심함을 채워준다.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많은 관광객이 출입신고소와 주차장 주변을 돌아다닌다. 금강산 육로 관광은 중단됐지만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은 꾸준한 모양새다.

출입신고소엔 주전부리 냄새가 가득하다. 더불어 망원경, 기념 자석, 액세서리 등 통일전망대 관광을 위한 물품이나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의 호객 행위도 계속된다. 넋을 놓고 기념품을 구경하는 도중 택시 기사가 도착해 함께 출입 신청서를 쓴다. 기사가 베테랑인 듯 신고 목록을 쉽게 쓸 수 있다. 택시로 통일전망대를 올라가면 장단점이 뚜렷하다. 안보 교육을 건너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택시 기사 데이터베이스에 쌓인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사악한(?) 택시비는 감당해야 한다. 물론 기사 대기 시간, 호출비 등을 고려해야 하지만 차량이 없는 개인 여행객이 쓰기엔 적지 않은 금액이다. 통일전망대로 올라가는 대중교통이 없다는 것과 통일전망대 측에서 따로 교통편을 제공해주지 않는다는 건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사진=김준철 기자]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사진=김준철 기자]

통일안보공원에서 통일전망대까진 약 11km나 되는 길이다. 이때부터 택시 기사와 수다가 한바탕이다. 제진리 근처엔 저도라는 작은 섬이 하나 있는데 이곳은 조업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해경이 지정한 날에 한해 한시적 조업이 가능하다. 해경이 깃발을 내리고 소리를 내면 어선들이 전속력으로 달려 좋은 자리를 선점해 문어 잡이를 시작한다고 한다. 또 민통선에서 농사일을 하려면 색깔 있는 조끼를 입고 출입증을 제시한 후 일정 시간에만 출입할 수 있다는 후문이다. 이야기꽃을 펼치며 올라가자 제진검문소가 나온다. 군인들이 삼엄하게 검문한다. 지난해 6월 민간인 3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검문소를 뚫으려 했다는데 무슨 패기인지 알 수 없다.

통일전망대 초입에는 기차커피숍 열차 식당과 PX 달팽이 크림 등을 파는 금강산 휴게소 등이 있다. 주차장이 꽉꽉 차 있는 것을 보니 그 인기를 자랑한다. 통일전망대 안내대로 길을 따라 올라가니 비무장지대(DMZ) 평화의길 집결지와 공군 351고지 전투지원작전 기념비, 성모상, 불상, 통일관 등이 차례로 나온다. 또 한켠에는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한 국무위원장이 선물한 풍산개 ‘곰이’의 새끼인 ‘금강’과 ‘해랑’이 평화 통일 염원 속에 자라나고 있다. 풍산개 두 마리가 인기척을 느끼고 다가와 말똥말똥한 눈을 한참 마주친다. DMZ와 남방한계선이 만나는 해발 70m 고지에 34m 높이로 당당하게 서 있는 통일전망타워는 DMZ의 ‘D’자를 형상화한 모습으로 기존 통일전망대 건물을 대신해 2018년 12월 개관했다.

해금강 [사진=김준철 기자]
해금강 [사진=김준철 기자]

타워에 들어서면 바로 1층 전망대가 보인다. 망원경이 여러 대 설치돼 있고, 앞으로 북녘 땅이 펼쳐진다. 많은 여행객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북한을 감상 중이다. 전망대에서 시선이 끌린 곳은 해금강이다. 해금강은 17세기 말에 이르러 금강산의 동쪽 바다 풍경이 금강산 못지않게 아름답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며 ‘바다의 금강산’이라는 뜻인 해금강(海金剛)이라고 불렸다. 해안가 기묘한 절벽들과 소나무가 우거진 많은 바위섬 등은 바다와 육지, 하늘과 어우러진 명작이라 할만하다. 해금강은 서해의 몽금포와 구미포, 남해의 다도해와 함께 4대 해안으로 이름났다고 하는데, 멀리서도 북극성처럼 거대한 바위들이 반짝거린다.

2층으로 올라가면 전망 교육실이 있다. 한참 강의중인 듯 강사가 마이크를 차고 통일전망대와 바깥 풍경을 설명하고 있다. 열의에 가득 찬 목소리가 스폿을 가득 메워서인지 통창 너머 풍경이 또 색다르다. 교육 끄트머리였는지 얼마 못 가 강의는 종료됐다. 교육실 앞에는 금강산과 해금강 위치를 그대로 옮겨 프린트하고 명칭을 적어 놨다. 관광객들이 각 지형과 남북 땅, 초소 등을 쉽고 확실히 알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교육을 청강한 관광객들은 우르르 앞으로 나와 손가락으로 축소판과 실제 풍경을 번갈아 가리키며 구경한다. 가족 단위 여행객은 부모가 아이들을 하나씩 담당하며 재차 교육에 나서고, 목소리 큰 40~50대 중년 여행객은 명칭을 두고 내기라도 걸었는지 작은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같은 층 남는 공간엔 통일과 관련된 볼거리가 전시돼 있다. 홍보관에서는 남과 북으로 나뉜 고성의 아픔을 알 수 있다. 지명이 같은 고성군인데 북고성군과 남고성군으로 불리는 게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북한에서 삶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사용 중인 물건들도 전시돼 있다. 마치 우리나라 1970~1990년대 모습인 듯한 사진과 이야기를 보니 북한 주민들은 한참 뒤처진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 이외에도 통일 한국의 비전이나 시너지 효과 등을 전망한 자료들도 있다. 일례로 동해선 철도 남북 출입사무소가 있는 제진역은 통일이 된다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유라시아 철도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한켠에는 ‘고성 DMZ 평화의 길 평화의 소망나무’를 설치해 수많은 방문객이 통일과 평화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들의 소망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평화의 소망나무 [사진=김준철 기자]
평화의 소망나무 [사진=김준철 기자]

3층 전망대로 오르면 북한의 금강산부터 고성 앞바다에 이르기까지 멋진 비경이 쭉 펼쳐진다. 앞서 1층 전망대에서 해금강과 금강산을 봤지만 높이를 다르게 해 보니 또 색다르다. 전망대 중간 중간 망원경을 설치해 국지봉, 구선봉, 위장마을, 월비산, 351고지 등을 더욱 더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 금강산은 얼마나 높은지 눈으로 완전히 뒤덮여 있었고, 깎아 내려지는 경사 역시 아찔하다. 면적 530㎢에 최고봉인 비로봉 높이만 1638m나 된다고 하니 웅장함이 다르다.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6세 아돌프가 금강산을 다녀가면서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하루는 금강산을 만드는 데 썼을 것”이라는 극찬을 남겼는데 실제로 보니 설득력이 충분한 말이다. 또 카메라 줌을 최대한 당겨서 보니 국군 초소와 북한군 초소도 보인다. 바로 앞에 길게 늘어진 군사 철책에서 새삼 한반도가 분단국가임을 다시 깨닫게 한다. ‘가깝지만 먼 곳’이란 표현이 이 상황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포토존에서 금강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컷 남기고,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북쪽 풍경을 바쁘게 눈에 넣은 뒤 타워를 내려온다. 그냥 발걸음을 돌리기에 아쉬운지 1층 전망대에서 다시 금강산과 해금강을 구경하는 여행객이 적지 않다. 타워를 벗어나니 늦은 오후 쨍한 햇빛이 바다를 때린다. 해파랑길 완보의 뿌듯함과 아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해 푸른 파도는 여전히 철썩이고 있다.

금강산 [사진=김준철 기자]
금강산 [사진=김준철 기자]

■ 걷기 여행 후기

‘느림이란 말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관능적이다. 느린 것은 아름다우며 온전한 관망과 감상을 허용한다. 걷기는 느린 움직임이며 이 점에서 세상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보게 해준다 ··· (중략) ··· 내달리는 사람이 조급하다면 걷는 사람은 한가하다. 전자는 시간에 쫓기고, 후자는 시간을 들인다. 노력 전체의 초점을 마지막 몇 미터에 맞추는, 달리는 사람에게는 오로지 도착만이 아름답다. 노력을 여정 전체에 걸쳐 분산하는, 걷는 사람에게는 오로지 길만이 아름답다.’

크리스토프 라무르 저서 ‘걷기의 철학’ 중 일부분이다. 여행객 사이에선 걷기 여행을 가장 잘 나타내는 글귀로 평가받는다. 즐거움을 위해 자신의 발걸음을 어디론가 옮기는 이들에겐 서두름이 없고, 자신만의 속도에 맞춰 길이 주는 느낌을 만끽한다.

해파랑길을 걷는 것 자체가 ‘선물’이었다. 우선 꾸준히 10km 중후반대를 걸으며 심신을 강하게 만들었다. 또 포항 호미곶과 추암 해변 촛대바위, 강릉 경포대,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본 금강산 등 절경에 가슴이 요동치는 경험도 했다. 동시에 국내 관광은 해외 관광보다 못하다는 초보 여행자의 편견을 보기 좋게 깨부쉈다. 더불어 기장 봉대산에선 무거운 짐과 경사에 어깨와 다리가 끊어지는 듯 했지만 두 가지 고통은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고, 포항 대진리에선 지름길로 가려다가 신발이 젖는 것을 경험하고 돌아갈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발로 걸어야지만 겪을 수 있는 배움이자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아울러 매번 길을 혼자 걸었음에도 여행객, 주민, 숙박업소 종업원, 식당·시장 사장님들과 얘기를 나누고 호흡한 건 단조로운 색채에 생동감을 주는 사건이었다. 결국 사람은 사람과 호흡했을 때 본인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되고, 여기서 오는 에너지의 파급력이 엄청나다고 깨닫게 된다. 중간 중간 등산길에서 만난 등산객들과 눈인사, 꾀죄죄한 몰골을 보고 푹 쉬라고 위로해 준 숙박업소 종업원, 해파랑길 우수성을 한참 자랑한 주문진 해파랑 쉼터지기, 고성군 관광 정책이 잘못됐다고 하소연하는 택시 기사 등. 이 역시도 걷기가 주는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해파랑길은 여기서 끝났다. 다시 지도를 펼치고 다음 선물을 받을 날을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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