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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폭력' 충격파,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거늘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7.07.1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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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뷰] 잔인한 ‘데이트 폭력’이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술에 취해 여자친구를 손찌검에다 발길질해 부상을 입히고 트럭까지 몰고 돌진한 20대 남성의 데이트 폭력 영상이 적나라하게 보도되면서 데이트 폭력으로 이름붙여진 무차별 폭력에 대한 제도적인 처벌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보도가 나가자 이 영상이 확산되면서 온라인과 SNS 상에서는 “이건 데이트 폭력이 아니다. 이성(異性) 격투기다” “무차별 폭행으로 살인행위나 다름없다”“데이트 폭력 처벌법이 생겨야 한다”는 등의 성토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송씨가 신당동에서 여자 친구를 무차별 폭행하고 있는 데이트 폭력 현장. 트럭 돌진까지 했다. [사진출처=YTN보도화면]

# 심야의 신당동 사건, ‘데이트 폭력’의 충격과 공포 실상
YTN에 따르면 서울 중부경찰서는 술에 취해 여자친구를 마구 때리고 트럭까지 몰고 돌진한 22세 손모씨를 특수폭행과 음주운전,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체포했다. 손씨는 18일 오전 2시쯤 서울 신당동 골목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를 주먹과 발로 마구 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피해 여성을 피신시키자 손씨는 만취 상태에서 근처에 주차돼 있던 1톤짜리 트럭을 몰고 돌진하기도 했다. 트럭을 몰며 시민들을 위협하자 시민들은 급히 대피했고 트럭 돌진으로 도로 펜스가 망가졌다. 운전 당시 손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치인 0.165%였다.

YTN에 따르면 손씨를 추격한 한 시민은 “여자가 너무 심하게 맞고 있으니까, 아무도 안 도와주면 여자분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도움에 나섰다고 말했다.

도를 넘는 데이트 폭력으로 부상을 당한 여성은 치아 3개가 파절되고 2개가 골절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에서 손씨는 피해 여성과 1년 정도 만나며 불화를 겪다가 술김에 폭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평소 동갑내기 여친과 험한 말을 주고받은 것에 남자로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로 전해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한 뒤 손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제도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출처=글로보뉴스]

# 데이트 폭력의 4가지 유형
‘데이트 폭력’이란 서로 교제하는 미혼의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위협 또는 실행이다. 연인 사이의 폭력이 더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피해자의 상당수가 한계 위협을 느낄 폭력이 나오기 전에는 피해 사실을 드러내길 꺼린다는 점이다.

데이트 폭력은 학계에서 감정 언어적 폭력, 성적 폭력, 신체적 폭력, 행동제약적 폭력 등의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감정 언어적 폭력은 화를 낼 것처럼 해서 데이트 요청을 거절 못하게 하거나,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행위, 싫어하는 별명을 부르거나 외모, 성격 등을 비하하는 행태, 나쁜 소문을 퍼뜨리거나,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으면 자살, 자해하겠다고 협박하는 폭력을 말한다. 성적 폭력은 한쪽의 일방적인 의사에 따라 원하지 않는 성관계나 스킨십을 강요하거나, 피임도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성관계에 따르는 임신, 감염 등에 대해 책임 지려하지 않는 행위 등을 망라한다.

신체적 폭력은 손목을 강하게 잡아 끌어당기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상처나 흔적이 많이 남지 않는 방법으로 위해를 가하는 행위까지 흔히 가볍게 넘어갈 성질의 폭행까지 포함한다. 행동제약적 폭력은 친구, 가족을 못 만나게 하거나, 옷차림, 외모, 화장법 등에 간섭하고,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 캐묻고 알리기를 강요하는 행태 등이 해당된다.

# 데이트 폭력 통계가 말해준다
통계에서도 이같은 데이트 폭력은 날로 심각해지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인 사이의 ‘데이트 폭력’ 사건으로 입건된 가해자는 8367명으로 이중 449명이 구속됐다. 2015년 7692명보다 8.8% 증가한 수치다. 데이트범죄는 2012년 7584건, 2013년 7237건, 2014년 6675건으로 꾸준한 감소세를 보였지만 2015년 7692건으로 급증했다.

심지어는 연인을 살해하거나 살인하려고 시도한 혐의로 검거된 피의자도 52명에 달했다. 2015년까지 5년 동안 데이트 폭력으로 숨진 피해자는 233명으로 한 해 평균 46.6명이 연인에 의해 비운의 운명을 맞았다.

대부분의 ‘데이트 폭력’은 남성에 의해 물리적인 힘이 약한 여성이 피해를 당한다. 지난해 ‘한국여성의전화’가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성인 여성 61.6%가 데이트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유형별 피해는 성적 폭력이 48.8%로 가장 많았고, 언어, 정서 및 경제적 폭력 피해도 45.9%로 비중이 높었다. 신체적 폭력 피해는 18.5%이었다.

언어적・정서적・경제적・신체적・성적 폭력이 처음 시작된 시기를 보면 사귄 후 6개월 미만에 발생한 비율이 평균 59.9%로,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여성응답자의 과반수가 연인관계 초반에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적폭력은 사귀기 전부터 사귄 후 3개월 미만에 발생한 비율이 52.1%로 다른 유형의 폭력에 비해 발생 시기가 빠른 특징을 보였다. 퇴치를 위한 정책으로 응답자들은 ‘접근 금지 등 (피해자의) 신변 보호 조치’, ‘가해자 처벌 등 법적 조치’, ‘피해자 피해 회복과 치유를 위한 지원’의 순으로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경찰청으로부터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가 10명 중 8명이라는 통계를 확인받은 뒤 “사랑으로 포장된 데이트범죄는 범죄피해 대상 역시 상대적 약자인 여성에게 집중되는 등 세상에서 가장 야비하고 비겁한 범죄”라며 “데이트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국민적 인식전환이 우선돼야 하며, 단순히 경찰청에만 일임할 것이 아니라 전정부차원에서 피해자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윤형 사건’으로 공론화
예전에는 ‘치정 폭력’이라는 말로 불려왔는데 언제부터 데이트 폭력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했을까.

화를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연인을 폭행했다거나, 이별 통보를 받은 남성이 여성을 살해했다는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데이트 폭력이란 용어는 ‘한윤형 사건’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2015년 5월, 진보논객이자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한윤형 씨의 전 여자친구라 주장하는 여성이 그의 폭력을 고발하는 글을 SNS에 올린 게 시발점.

‘한윤형의 데이트 폭력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이 글에서 해당 여성은 예전 한윤형 씨와 연애 시절 자신이 여러 차례 폭행을 당해왔음을 주장했다. 구체적인 폭행 경험을 전하면서도 한윤형 씨와 헤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때린다는 것을 제외하면 꽤나 괜찮은 연인”이었고, “그가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썼다. 급진적 페미니스트인 본인 역시도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음을 전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이에 한윤형 씨는 부분적으로 인정하며 사과하는 글을 올린 바 있다.

이후 다양한 SNS를 통해 피해자들이 유명인과의 사례를 고발하고 공론화하면서 데이트 폭력이 우리의 일상 속에 있는 심각한 폭력 현상으로 수면 위에 드러나고 있다.

# 외국의 데이트 폭력 대처 실태는?
외국에서는 연인 사이 폭력 문제에 법적으로 대처해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1990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최초로 스토킹금지법을 제정한 이후 50개 주에서 스토킹 형사처벌법이 시행되고 있다. 1994년에는 의무체포와 민사상접근금지명령을 수단으로 하는 여성폭력방지법에 데이트 폭력이 포함됐다. 2000년에는 데이트 폭력 피해자, 가정폭력피해 이민자,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가장 강력한 권한인 의무체포에 주목했는데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는 의무 체포돼 피해자와 격리돼 실효성을 높이고 있다.

영국에서는 2009년 자신의 전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당한 클레어 우드의 이름을 딴 ‘클레어법’을 제정해 데이트 폭력에 대처하고 있다. 연인의 가정폭력 전과 또는 폭력과 관계된 전과를 조회할 수 있게 제도화했다. 데이트 상대의 전과 조회는 경찰에 전화하거나 직접 경찰서를 찾아가 신청하면 면담 등을 통해 배우자 또는 파트너의 정보와 대응방안도 제시받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영국처럼 교제 상대방의 전과를 조회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가정폭력방지법이나 여성폭력방지법에 데이트 폭력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했다.   

# 데이트 폭력 방지법 제도화 논의, 제자리걸음만
그러나 우리나라 법률에는 '데이트 폭력'을 특정해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 가정폭력범죄 특례법에 따라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긴급 임시조치’로 격리조치할 수 있는 부부간 폭력과 달리 데이트 폭력은 관련 규정이 없는 것이다. 명확한 거부 의사 표명에도 따라다니는 ‘스토킹’의 처벌 근거조차 경범죄에 해당돼 10만원 이하 범칙금만 내면 대부분 풀려나는 게 현실이다.

데이트 폭력과 관련해 1999년 ‘스토킹 처벌에 관한 특례법안', 2003년 ’스토킹방지법안‘, 2005년 ’스토킹 등 대인공포 유발행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안‘이 발의됐지만 입법화되지 못했다.

가장 최근엔 지난해 2월 박남춘 민주당 의원이 “현행 형사법 체계로는 교제중인 남녀간의 폐쇄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트 범죄를 근절하기가 어렵다”며 ‘데이트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역시 제도화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장미 대선 후보였던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는 올해 여성의 날 기념 여성정책발표에서 데이트폭력, 스토킹폭력, 디지털폭력을 ‘신종 3대 여성폭력’으로 규정해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의 제정, 가정폭력전과공개제도인 클레어법의 도입, 스토킹 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정 등을 촉구한 바 있다.

심야의 신당동 데이트 폭력영상. [사진출처=YTN보도화면]

# 경찰 긴급대응-시범 사법처리만로는 데이트 폭력 근절에 한계
‘데이트 폭력’에 대한 처벌이 법제화되지 않은 가운데 경찰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현장 대응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서울 강남에서 동거녀 집에 무단 침입한 강모씨가 경찰에 연행됐다가 풀려난 3시간 뒤 무차별 폭력으로 동거녀를 숨지게 하는 등 데이트 폭력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자 피해자 보호를 위해 내놓은 조치. 경찰은 지난 3월 112시스템에 ‘데이트 폭력’ 코드를 신설해 출동 경찰관이 데이트 폭력 사건임을 미리 인식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개선한 것이다.

형사처분 대상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도 가해자에게 서면경고장을 적극 발부해 이후 불법 행위를 더는 못하도록 유도한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지역경찰과 수사전담반이 동시에 현장으로 출동해 보다 전문적으로 대응하는 조치였지만 근원적인 데이트 폭력 근절책은 될 수 없다.

사법부에서도 지난해 4월 피해자와의 면담을 통해 피해 실상을 담은 종합보고서를 작성해 사법처리에 반영하도록 하는 범죄피해평가제도가 시범 실시된 바 있다. 이에 따라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 보호를 위해 기존보다 강한 처벌이 내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데이트 폭력 방지법 제도화에 대한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1,2인 가구가 대세가 되고 결혼에 대한 의식이 줄어드는 추세에서 연인들의 교제도 일시적이 되면서 갈등도 많이 빚어지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감정적이고 강압적인 행태로 데이트 폭력도 늘어나게 된다. 법은 사회 변화에 맞춰나가야 하는데 여전히 데이트 폭력의 실태에 비해 법적 대응은 뒤처져 있다.

연인 사이에서 폭력에 쉬쉬하다가 끔찍한 불행을 낳고서야 후회한다면 사회 안전망의 부재에 따른 책임이 크다. 언제까지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만 할 것인가.

박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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