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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이슈] '지원금 비리' 사립유치원 논란, 그 종착지는?

  • Editor. 이선영 기자
  • 입력 2018.10.2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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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이선영 기자] ‘지원금 비리’ 사립유치원 논란의 불을 지핀 동탄 환희유치원 전 원장 A씨가 지난 17일 유치원 강당에 모인 200여 학부모 앞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경기도교육청 감사결과에 따르면 A씨는 교비로 7억원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학부모들이 항의방문하자 구급차를 타고 도주했고, 사흘 만에 사과하는 자리였다.

A씨의 사과에도 성난 학부모들의 탄식이 터졌고 일부는 분을 이기지 못해 왈칵 눈물을 쏟기도 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A씨가 울면서 짧은 사과를 한 뒤 현장을 떠날 때까지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유치원 정상화를 하겠다는 그의 약속을 믿어보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비리 사립유치원 논란에 학부모들의 눈물과 분노가 얼룩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다수 동탄 환희유치원 학부모들의 경우 A씨를 용서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 울화를 삭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환희유치원 학부모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 유치원 학부모 중 절반가량이 맞벌이하며 아이를 유치원에 맡기고 있다. 이 유치원의 비리가 적발되고 일부 학부모들은 휴가까지 내서 아이를 등원시키지 않기도 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 결국 다시 아이를 유치원에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일 교육청 감사결과로 비리가 드러난 사립유치원의 실명을 처음으로 전격 공개한 뒤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충격을 받은 학부모들의 분노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지만, 당장에 아이 맡길 곳이 없는 부모들은 어찌할 도리 없이 속앓이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리 사립유치원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사립유치원 투명성 강화와 비리 근절을 위한 교육당국의 전방위 대응이 시작됐다. 교육부는 18일 규정 위반의 경중이나 시정 여부와 상관없이 학부모가 언론에 보도된 유치원을 모두 비리 유치원으로 오인하는 등 혼란이 커지고 있는 만큼 2013∼2017년 감사 결과를 전면 공개하기로 했다.

그동안 교육청들은 비위가 있더라도 해당 유치원의 실명 공개를 가급적 피해왔지만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나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춰 사립유치원에 대한 감사 결과를 모두 실명으로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뒤늦게 강경 모드로 돌아선 상황이다.

비리가 드러난 동탄 환희유치원 전 원장이 학부모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국 시·도교육청들은 오는 25일까지 유치원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하기로 하고 실명 변경 작업에 나섰다. 이에 따라 학부모들은 새달 1일 유치원 원서접수 시작일에 앞서 자세한 감사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사립 유치원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단설·병설 공립유치원 감사 결과도 실명으로 밝힐 것인지 주목된다. 사립유치원 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사법절차를 거쳐 무고함을 인정받은 유치원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폭압과 독선”이라고 실명 공개의 부당함을 주장하면서 “국공립 초등학교의 감사결과도 실명으로 공개하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시도 교육청들은 교육부 결정에 따라 19일 일제히 비리 신고센터 가동에 들어갔다. 서울, 경기, 부산, 대구, 울산, 대전, 충북, 경남교육청 등 시·도교육청들은 이날 홈페이지에 유치원 비리신고센터를 개설했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이 유치원 비리 신고를 받은 첫날엔 30건이 넘는 사례가 접수됐다.

교육청들은 신고가 접수되면 전담팀을 통해 장학 지도 사안인지, 조사·감사 사안인지 판단해 대응하게 된다. 공금 운용이나 학사 관리 등 유치원 내부 문제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교사들의 공익제보가 접수될지 주목된다.

사립유치원 비리 논란을 두고 누리과정(만3∼5세 교육과정)비 등 정부 지원금의 성격과 지급방식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사립유치원 비리의 근원이 이 정부 지원금 성격과 지급 방식에 있다는 지적에서다.

대체로 지원금을 학부모에게 직접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과 법적으로 ‘지원금’이 아닌 ‘보조금’ 성격을 적용해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양상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3년부터 정부가 유아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사립유치원에는 한 해 2조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정부와 각 시도 교육청이 사립유치원에 쏟는 예산은 매달 누리과정지원금 22만원과 방과 후 수업비 7만원, 교사처우개선비 1인당 최고 59만원, 학급운영비 25만원 등이다. 시도 교육청 재량으로 급식지원비와 교재구입비까지 지원된다. 이런 지원금은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과 책무성을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유치원비리신고센터를 개설한 첫날 30건 넘게 신고가 접수됐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지원금의 성격과 지급방식을 둘러싸고 사립유치원 측과 정부의 주장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유치원 누리과정비의 경우 학부모가 유치원에 등록하면 교육청이 유치원에 지급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사립유치원은 이 지원금이 2013년 이전에는 학부모들이 냈던 원비이고, 지금도 수익자가 유치원이 아닌 학부모라며 학부모에게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교육부와 전문가들은 학부모에게 누리과정비를 직접 지원하는 것이 유치원 비리의 해법이 아니라 자금의 용처를 더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지원금을 둘러싼 논란도 확산되면서 정치권에서는 누리과정비를 아예 '지원금'이 아닌 '보조금' 명목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누리과정비를 엉뚱한 곳에 쓸 경우 확실하게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하는 셈이다.

현재 일선 유치원은 △정부지원금 △정부보조금 △학부모 부담금으로 재원을 쓰고 있는데, 누리과정 국가 예산은 ‘지원금’으로 분류된다. 지원금을 사립유치원 원장이 부정 사용했을 때 횡령죄를 적용받지 않는다. 누리과정 지원금은 학부모 부담금으로 본 판례에 따라 사립학교법을 적용받는 사립유치원의 학부모 부담금은 사립학교 경영자의 소유로 보기 때문이다. 사립유치원 원장이 누리과정 지원금을 유용하면 환수도 불가능하고, 횡령죄를 물을 수 없는 이유다.

지원금을 부적절한 곳에 쓸 경우 환수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지만, 보조금은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리게 돼 있어 더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립유치원장들이 움직이는 지역구 표심의 유혹과 압박에 맞서 사립유치원 비리 척결을 위해 흔들림 없이 가겠다”고 선언한 박용진 의원은 오는 25일 누리과정비를 보조금으로 명시하고, 사립유치원도 회계 프로그램 사용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박 의원은 아울러 사립학교법도 개정해 학부모들이 추가로 내는 부담금까지도 교육 목적이 아닌 곳에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21일 비공개 당정협의에서 이런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19일 기재부 국감에서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유치원 등에 대해 "회계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공립 유치원에는 국가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이 적용되고 있지만, 사립유치원에는 반대에 부딪혀 도입되지 못했다.

비리 사립유치원 감사결과 명단을 처음으로 공개한 박용진 의원이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민단체와 학부모들의 단체행동도 이어진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20일 오전 서울 시청역 앞에서 유아교육·보육 정상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어 비리 유치원 사태와 관련해 한유총과 교육당국 책임자 처벌, 국가회계시스템 도입, 국공립 단설 유치원 확충을 정부에 요구한다.

동탄 유치원사태 비상대책위원회 측은 21일 오후 동탄에서 유치원 비리를 규탄하는 단체행동을 통해 △사립 유치원에 국가회계시스템 도입 △입학 설명회 및 추첨제 반대 △단설 유치원 신설 △국공립 유치원 확충 △적발 유치원 강력 처벌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일부 사립유치원을 두고 불거진 ‘지원금 비리 논란’이 유치원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있다. 관행의 벽을 쳐놓고 주저하다 들끓는 국민의 공분에 놀라 뒤늦게 대처에 나선 교육당국, 제도의 허점을 뒤늦게 보완하려는 정치권의 행보가 좀처럼 걱정과 분노를 가누지 못하는 학부모들의 마음을 얼마나 어루만져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유치원 원서접수가 다가오는 가운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립유치원 비리 논란의 종착지는 과연 어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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